기타 노래에 희망을 전하는 복지과장! <군수!>작가 홍현숙 저는 20여 년 전, 30대 초반에 개인적인 큰일로 충격을 받고 정신병동에 입원했는데, 그때 들어보지도 못한 병명, 양극성 장애(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50대 초반 현재까지 정기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면서 약을 복용하고 철저히 정신건강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또 다른 2차 충격을 받았었어요. 바로 가족으로부터, 직장 동료로부터, 사회로부터 ‘정신이상자’라는 주홍 글씨가 새겨져 편견과 선입견에 휩싸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대인기피, 소심, 무기력, 의욕 상실, 걱정, 두려움 등의 깊은 불안과 어두운 감정으로 가득 차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기는커녕 하루하루를 버텨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빛은 왜 또 그렇게 검고 어둡게 보였을까요? 이와 같은 저의 모습 때문인지, 저는 10년 뒤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내가 건강을 철저히 관리하고 생활을 잘 유지해도 지금 상황과 같거나 더 나빠져 있을 거라는 생각만 들어,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조차 포기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40대 후반에 한 인문학 강의를 듣게 됩니다. 강의를 통해 ‘10년 뒤 나의 모습은 현재 내가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에서 그려진다’는 것을 깨닫고, 한 번 뿐인 나의 인생을 재설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에게도 나약한 모습 이면에 또 다른 강인한 모습이, 단단한 모습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삶에 대한 애살이 남아 있음에 정말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10년 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생각으로 끝내서는 안 되겠고, 미래를 위해 현재 노력의 씨앗을 심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노력이 겨자씨만 한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10년 뒤 반드시 나의 삶 어딘가에서는 열매로 드러날 것이라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먼저 나의 모습과 삶을 돌아보며 냉철하게 진단해 보았습니다. ‘무엇이 부족할까?’,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지?’ 등 나를 성찰하였고, 현재까지 매일 한 가지씩 고쳐보고 다듬어보고 노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래의 내 모습이 설레는 마음으로 새롭게 그려졌습니다. 내가 그리는 10년 뒤 나의 모습은 바로 ‘기타 노래에 희망을 전하는 복지과장, 나아가 운이 좋으면 군수까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저는첫째, 더욱 건강해지기 위해 약을 매일 복용하고 체중 관리를 위해 줌바댄스 등 신나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둘째, 잘은 못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기타를 배우고 싶어서 복지센터 프로그램을 신청했습니다.셋째, 사이버 신학대학원과 평생교육원을 통해 신학 상담과 사회복지를 배우고 있습니다.넷째, 저의 직장 공무원으로서도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요? 또 그 꿈을 위해 한 가지씩 노력하며 준비하고 있을까요? 공무원으로 경험한 바를 떠올리다 보니, 의사 결정에 합의가 이루어지고 사회에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정책 결정권자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이 보다 나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욱 이 부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지금 저는 공무원 조직에서 질병 휴직에 따른 편견과 선입견 탓인지 승진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말단 공무원이지만,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며 다시금 꿈꾸어 봅니다. 10년 뒤 저는 공무원 정년퇴직 시점이 되네요. 공무원 퇴직이 저의 인생 이모작 ‘기타 노래에 희망을 전하는 군수’의 시작이 되도록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꼼꼼히 준비해 나가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주 느리게 배우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는 마침내 배우고 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