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장애인 채용 돕는 사회적기업장애인 직원 유지율 90% 넘는 히즈빈스정신장애인 고용해 맛도 생산성도 높여 10년째 히즈빈스 커피 로스팅을 책임지는 ‘향기제작소’에서 총괄 업무를 맡은 톰이 로스팅 커피를 테스트하고 있다. 향기내는사람들 제공. “저...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은데, 혹시 이 선생님이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히즈빈스의 한 카페. 단골손님이 주문을 받는 직원 옆에 서 있던 바리스타를 바라보며 건넨 한마디가 그 공간의 공기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직원이 의아해하며 이유를 묻자, 손님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히즈빈스 아메리카노는 정말 맛있어요. 그런데, 올 때마다 이 바리스타 선생님이 내려주신 커피를 마셨거든요.”그 말을 들은 바리스타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얼굴이 불그스레해졌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머금은 채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건네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맛없으면 환불해 드릴게요!”20년 가까이 조현병과 우울증으로 절망 속에 살던 한 남성이 ‘히즈빈스’에서 바리스타로 성장하며, 손님의 작은 칭찬으로 삶의 의미와 희망을 되찾은 순간이었다. 그날 밤, 그는 히즈빈스 창립자인 임정택 (주)향기내는사람들 대표와의 미팅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43년을 살면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제가 왜 사는지, 제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오늘 알았어요. 제 커피를 드시는 분들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선사하고 싶습니다.”2014년 히즈빈스에 입사한 톰(가명)은 히즈빈스의 커피 로스팅 전문가로 성장했다. 대학 시절 평범한 미래를 꿈꾸던 그는 20대 초반 조현병 진단을 받고, 20년 가까이 병원을 전전하며 삶의 의미를 잃은 채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히즈빈스 커피 로스팅을 책임지는 ‘향기제작소’에서 커피 로스팅 총괄을 맡아 10년째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로스팅은 온도와 시간을 미세하게 조율해 커피 맛을 결정짓는 핵심 공정이다. 대학 시절 기계 공학을 공부하며 익힌 기술적 이해가 로스팅 기계 운용과 품질 관리에서 강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톰은 이렇게 말한다. “커피는 이제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닙니다. 커피는 제 삶을 새롭게 정의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도구입니다. 제 손에서 만들어진 커피가 고객들에게 전해질 때, 제 삶의 의미도 더 깊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히즈빈스 롯데렌탈 서계사옥점 멤버들.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 중인 로즈(왼쪽), 환대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매니저 로사(가운데), 유튜버를 꿈꾸는 지구(오른쪽). 향기내는사람들 제공. 그들의 삶을 바꾼 이 카페는 다른 곳과 다른 뭔가 특별한 것들이 있다. 임정택 대표는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고객의 작은 칭찬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기적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성취감과 자신감은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건 단순한 커피가 아니라, 사람들의 존엄과 자립을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공간 사회적기업 ‘(주)향기내는사람들’이 운영하는 커피 브랜드 ‘히즈빈스(HISBEANS)’의 매장 풍경은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다. 한쪽에선 포스기로 주문을 받고, 바리스타는 진지한 눈빛으로 커피를 내린다. 그러나 이곳의 특별함은 직원 대다수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히즈빈스에서는 조현병, 조울증 등 정신장애를 진단받은 바리스타들이 손님들과 직접 소통하며 일한다.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에서도 장애인을 고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매장 청소나 단순 보조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히즈빈스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직접 음료를 제조하고 손님과 소통하며 매니저급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임 대표는 “히즈빈스는 장애인 직원이 보조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성장할 기회를 제공한다”며, “정신장애를 가진 분들도 전문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일자리, 자립과 존엄 회복의 발판이 됩니다” 지난해 12월27일 오후, 서울 성수동에 있는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사무실에서 ‘(주)향기내는사람들’의 임정택 대표를 만났다. 임 대표는 2009년 한동대 3학년 재학 중 자원봉사를 하다 만난 정신장애인들에게 일터를 제공하기 위해 교내에 ‘히즈빈스’라는 카페를 열었다. 그는 포항제철과 학교 총장실의 문을 직접 두드리고 설득하며, 경북 포항의 한동대에 10평 남짓한 작은 커피숍을 마련했다. 그렇게 시작된 히즈빈스는 어느덧 15년의 역사를 쌓아왔다.임정택 (주)향기내는사람들 대표. 향기내는사람들 제공. 현재 히즈빈스는 서울과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 36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필리핀에도 매장을 열었다. 2023년 기준으로 매출 53억 원을 달성했고, 직간접적으로 고용하는 장애인 수는 165명에 이른다. 특히 장애인의 3개월 이상 직무 유지율이 한국 평균 18.3%에 불과한 상황에서, 히즈빈스는 90% 이상의 높은 유지율을 기록하고 있다.일자리는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한 사람의 삶에 안정감을 부여하고 자존감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기반이다. 히즈빈스에서 일하며 변화를 경험한 직원들 대부분은 그들의 첫 월급을 손에 쥐고 눈물을 흘리곤 한다. “10년간 누워만 지내던 제가 이제 어머니께 월급을 드릴 수 있어 행복합니다.” 명동점에 근무하는 바리스타 데이지(가명)는 단순히 하루를 견디는 것조차 힘들었던 자신에게 히즈빈스는 “새로운 시작을 선물해준 공간”이라고 전했다. 임 대표는 “월급이 단순히 돈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평범한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립과 존엄을 회복할 수 있는 발판”이라고 강조했다. “품질로 승부합니다” 마케팅 방식 역시 각별하다. ‘착한 일을 하니 도와달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커피의 맛과 품질, 공간의 경쟁력으로 고객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경영 철학을 고수한다.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서 1등급을 인정받는 ‘게이샤’ 원두를 고집하고 있다. 최적의 단맛과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시행착오 끝에 로스팅 기기의 내부 전도열을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도 취득했다. 장애인 직원의 이름으로 커피 블랜드와 디저트를 출시하며 제품군을 다각화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2024년 8월 17일. 히즈빈스 명동점에서 첫 번째 ‘이상한 바리스타 대회(The Wonderful Barista Championship)’가 열렸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200여명의 히즈빈스 직원이 모여 각자의 개성과 실력을 발휘하고, 서로의 강점을 지지하며 응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향기내는사람들 제공. 임 대표는 “히즈빈스는 장애인이 일하는 카페로 홍보하지 않으려 한다”며, “히즈빈스는 커피가 진짜 맛있고 분위기도 좋은 곳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커피를 만들고 서비스해주는 분들이 장애인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단순히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장애인 고용에 새로운 해법 우리나라의 ‘장애인의무고용제’는 1991년 도입되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장애인 고용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2023년 기준 민간기업(월 평균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고용)의 장애인 평균 고용률은 2.99%로 여전히 법적 의무고용률인 3.1%에 미달한다. 의무고용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들이 납부한 고용부담금은 2023년에만 3조1700억원을 넘어섰다.이러한 낮은 고용률과 근속률은 사회적 편견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 과정과 관리에서 겪는 어려움에서도 비롯된다. 임정택 대표는 “많은 기업이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를 찾지 못하거나, 채용 이후의 관리가 어려워 부담금을 선택하고 있다”며, 이를 단순히 고용 회피가 아닌, 기업이 처한 현실적인 장애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히즈빈스는 이런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주)향기내는사람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 고용의 해법으로 히즈빈스 사내 카페(자문 운영점) 모델을 제안했다. 이 모델을 통해 기업은 고용부담금을 대신해 장애인을 고용하고, 히즈빈스가 채용·교육·관리를 전담해 장애인의 직무 적응을 돕는 방식이다. 현재 롯데, 에스케이(SK), 에스엘 주식회사, 와디즈 등 28개 기업이 히즈빈스 자문 운영점 28곳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 사무실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직원을 중심으로 향기내는사람들 구성원들이 '유니버설 디자인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이 워크숍은 모든 사람이 제약 없이 공간, 제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다. 향기내는사람들 제공. 임 대표는 “장애인을 고용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거나 부담금보다 더 큰 비용이 들어간다는 오해와 달리, 사내 카페를 통해 기업 분위기가 개선되고 비용절감을 실현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는다”며, “장애인 고용이 포용적 조직 문화를 형성하고, 기업의 생산성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나아가 히즈빈스는 장애인이 카페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직무 형태의 다변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15년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컨설턴트 양성’, ‘장애 유형별 직무 인큐베이팅’, ‘장애인 직무 훈련 학교’, ‘장애인 고용 확산 운동’ 등 장애인 고용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임 대표는 “시청각 장애인과 발달장애인과 같은 서비스 약자도 동일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직영점을 중심으로 ‘유니버설 서비스’ 정책을 수립해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니버설 서비스는 제품·시설·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성별·나이·장애·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용과 기다림의 철학 ‘다각적 지지 시스템’ 히즈빈스의 성공 비결은 체계적이고 포용적인 지원 구조인 ‘다각적 지지 시스템’에 있다. 이 시스템은 정신장애인 직원들이 감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체계다. 매니저,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선후배 직원들이 연계해 직무와 개인 생활, 고충까지 함께 해결하는 소통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0년에는 특허청으로부터 ‘장애인 고용관리 관련 특허’를 받기도 했다.2023년 7월 10일부터 15일까지 히즈빈스에선 ‘친구데이(ㅊㄱㄷㅇ)’ 이벤트가 열렸다. 손님과 직원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가 되는 특별한 시간. 사진 속 히즈빈스 용산점 매니저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웃음과 에너지가 틈새를 비집고 흘러와 서로를 어우러지게 하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향기내는사람들 제공. 매일 아침, 비장애인 매니저는 장애인 직원의 컨디션과 약 복용 상태를 확인한다. 혹시 어려움이 발견되면 이 직원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에게 연계해 상담을 진행하거나 필요할 때 의사와 협력한다. 임 대표는 이를 가리켜 “지속적이고 세심하게 기다리고 다시 또 시작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설명한다. 한 사람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의 핵심고리다.임정택 대표는 “일반 회사에선 직원이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다’고 하면 대체로 고용을 종료하겠지만, 우리는 기다립니다.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 일터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리며, 지지하고 격려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한 직원이 망상 증상이 다시 심해져서 폐쇄 병동에 3개월간 입원했을 때, 다른 사람을 채용하지 않고, 동료들이 응원의 영상과 편지를 보내며 기다린 끝에 복귀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장애인 직원 한 명을 위해 1~2년의 교육을 투자하며, 위생 및 서비스 교육도 각자의 속도에 맞춰 진행한다. 임 대표는 “끊임없이 관심과 지지를 보내는 것이 핵심”이라며, 장애인 고용이 특별한 일이 아닌, 평범한 문화로 자리 잡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더욱 확산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obogi@hani.co.kr출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176466.html